▲가족이 함께 했던 졸업식 풍경. 사진은 1972년 안동초등학교 졸업사진 ⓒ지영
남는 건 사진이라고. 인생에 몇 번 되지 않을 졸업식에 사진을 남기는 일이란 꽤 중요했다. 가족은 물론 친척들도 꽃다발을 들고 오기도 하고, 졸업하고 나서 다시 만나게 될 지 알 수 없는 친구들, 선생님 과 사진을 남겼다.
물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짜장면을 먹는 게 하이라이트긴 하지만.
그런데 돌이켜보니 학창시절 졸업식 사진이 내게는 많지 않다.
초등학교 졸업식은, 공교롭게도 세 살 많은 둘째 언니와 졸업식 날짜가 겹쳤다. 할머니는 나의 졸업식에, 엄마는 둘째 언니 졸업식에 참석했고 중국집에서 만났다. 그것도 나름 괜찮았다.
문제는 중학교 졸업식이다.
우리 집은 당시 고추 상점을 하고 있었는데, 도소매를 함께 하는 가게라 늘 분주했다. 부모님 가운데 한 분만 가게를 비우는 것도 쉽지 않았으나, 막내딸 졸업식을 위해 다행히 엄마만은 시간을 냈다. 할머니와 함께 온 엄마는 꽃다발을 두 개나 들고 왔다. 설마, 나를 위해 두 개를 들고 온 건 당연히 아니었다. 엄마는 나를 만나자마자 대뜸 “네 친구 현주 말 이야, 걘 어딨니?”라고 했다.
“현주? 누구?”
“네 친구 현주도 몰라? 중국집 딸.”
그 아이라면 알고 있다. 같은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녔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같은 반이기도 했다. 하지만 길게 대화를 나눈 적은 없었다. 얼굴과 이름 정도는 알고 있지만, 내 기준으로 친구는 아니었다.
어쨌든 엄마는, 부탁받은 꽃다발을 현주에게 전해 주어야 한다고 했다.
1년 가운데 가장 큰 대목인 졸업식, 중국집 사장 내외 누구 하나 가게를 비울 수 없었다. 엄마에게 큼직한 꽃다발을 사 안기며 부탁을 해온 거라 했다. 엄마는 가게의 큰 단골이며, 딱하기 그지없는 막내 딸 친구 현주를 찾아 꽃다발을 전해주고 사진도 찍어줘야 했다.
하지만 난 내성적인데다가 같은 반이었다는 이유 로 ‘친구’란 말을 쉽게 붙이지 못하는 아이였다. 내겐 ‘그냥 아는 아이, 그냥 친구, 친구, 친한 친구’가 존재했다. 기준에 대한 명징한 설명은 불가능했으나, 내게만은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었다. 그런면에 서 현주는, ‘그냥 아는 아이’에 가까웠다. 그런 현주 를 찾아오라니,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엄마의 채근에 일단 무작정 현주를 찾아 나섰다. 아이들은 운동장에 쏟아져 나와 있었다. 반별로 모여 있는 것도 아니니 무작정 뛰어다녀야 했다. 손바닥만 한 운동장이라 해도 현주를 찾는 건 쉽지 않았다.
“엄마, 현주가 없는데?”
난 금세 다시 돌아왔다. 멋을 내느라 옷을 얇게 입어 너무 추웠다. 무엇보다도 내 친구들하고 사진 한 장 찍지 못했다.
엄마가 눈을 흘겼다.
“현주 엄마가 신신당부 했단 말이야.”
엄마는 손에 든 큼직한 꽃다발을 아예 내 품에 안겨주었다. 할 수 없이 다시 현주를 찾아 다녔다.
“지영아, 사진 찍자.”
친한 친구, 혜수가 손을 흔들었다. 혜수의 귀여운 동생들, 혜수의 엄마도 나를 반겼다. 하지만 한가로이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일단 현주를 찾아야 했으니까.
“현주 봤어?”
혜수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곧 내 이야길 듣더니, 걔네 반에 가봤냐고 물었다. 난 현주에게 꽃다발을 전해주고 다시 오겠다고 말하곤 학교 안으로 뛰어갔다. 4층 계단을 뛰어 올라갔으나, 복도는 텅비어있었다.
다시 운동장으로 내려왔다. 아는 척 해오는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1반 현주를 보았냐고 물었으나 모두들 고개를 저었다.
그러다 현주를 만났다. 현주는 운동장 한가운데, 그냥, 우두커니 서있었다. 어쩌면 교문을 바라보았는지도 모른다. 난 너무 기뻐 현주의 이름을 불렀다. 나보다 키가 컸던 현주는 꽤 세련돼 보이는 트위드 자켓을 입고 있었다. 난 현주에게 꽃다발을 주었다. 그 순간만은, ‘그냥 친구’에 가까워진 현주를 데리고 엄마 앞으로 갔다.
엄마는 나와 현주를 앞에 세웠다. 우린 꽃다발을 하나씩 가슴에 들었다. 물론 내 꽃다발은 현주의 꽃다발에 비해 크기도 작고 소박했다. 그렇게 우리 둘은 사진을 찍었다. 기억컨대 현주도 나도 웃지 않았다. 묵묵히 사진을 찍는 엄마의 카메라를 진지하게 바라봤다.
그러곤 난 나의 친한 친구, 혜수를 찾으러 운동장을 향해 뛰어갔다. 이번엔 “혜수 봤니?”라며 다시 돌아다녀야 했다.
하지만 혜수는 이미 가족과 몇 장의 사진을 찍고 학교를 떠난 모양이었다.
너무 늦게 가면 중국집에 앉을 자리가 없다는 건 불문율이었으니까.
우리 가족은, 그날 현주네 가게인 중국집에 짜장면과 탕수육을 먹으러 가지 못했다. 너무 오랜 시간 가게를 비워뒀으므로, 엄마는 서둘러 돌아가야 했다. 더구나 난 너무 지쳤고, 친한 친구들과 사진 한 장 못 찍어 이미 마음이 상해있었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을 뿐이었다.
문득 현주의 마음에 대해 생각해봤다. 아마도 그 날 현주네 부모님은, 어떻게든 졸업식에 들러 꽃다발을 주고 사진도 찍으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밀려드는 손님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오랜 단골이기도 하고 현주의 친구 엄마이기도 한, 우리 엄마에게 간곡히 부탁했을 것이다. 만약 내가 현주의 엄마라도 그것이 최선이었을 것이다. 우리 엄마 또한 딱하게 느껴지는 현주 먼저 챙겨줘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 이다.
하필 부피도 크기도 해서, 짐짝처럼 느껴지던 커다란 꽃다발을 건네주곤 본인도 결코 함께 찍고 싶지 않았을 사진 한 장 찍고 나선, 쌩하니 돌아서 뛰어가 버린, ‘그냥 아는 아이’ 지영이에 대해 현주는 어떤 회상을 할까.
어른들 나름 최선의 선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도 아마도 현주에게도 그리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았을 중학교 졸업식.
그날의 기억을 더듬으며 오랜만에 앨범을 뒤져보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현주와 찍은 사진은 어디에도 나오지 않았다. 어제 일인 양 떠오르는 선명한 기억이 잘못된 것은 아닌지, 사 진 한 장 없다고 의심하기에 이르렀다.
한편으로는 그놈의 사진이 뭐길래, 사진 한 장 찍겠다고 학교를 뛰어다니며, 그리도 찾아다녔나 싶기도 했다.
그리고 사진이고 꽃다발이고, 왁자하게 몰려가 먹는 짜장면의 추억이고 뭐고, 아무것도 만들 수 없는 코로나 시대의 졸업식을 생각해봤다.
지금의 아이들은 훗날 어떤 추억을 갖게 될까. 그 마음을 생각 하니 조금 쓸쓸해졌지만, 어쩌면 그건 나의 기우일 지도 모른다.
당시엔 분명 유쾌하지 않았건만, 그날의 추억을 떠올리는 지금의 나로선 꽤나 재밌고 소중하게 느껴지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