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붉은머리오목눈이를 보았을 때 나는 참새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무심하게 그들 곁을 지나쳤다.
며칠 뒤 다시 한 떼의 붉은머리오목눈이를 만났다.
그제서야 그들의 눈이 참새와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달푸리풀 사이를 나는 뱁새(ⓒ임세권)
몸을 덮고 있는 깃털도 참새보다는 더 밝고 부드러웠다. 사실 참새를 가까이 들여다보면 귀엽 다기보다는 좀 사납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정면으로 참새를 보면 검은색과 짙은 갈색의 깃털이 크게 반짝이는 두 눈을 중심으로 어울려 있는데 이는 마치 나를 공격하려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그런데 붉은머리오목눈이는 앞뒤 양옆 어느 쪽에서 보아도 귀엽기 짝이 없다. 강변에서 만난 새 중에서 가장 친근하고 사랑스러운 새를 든다면 나는 서슴치 않고 이 붉은머리오목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새는 텃새다. 이 사랑스러운 새를 일년 내내 볼 수 있으니 강을 걷는 것은 얼마나 큰 행복인가?
그런데 붉은머리오목눈이라는 이 긴 이름은 누가 붙였는가? 오목눈이라는 새가 있기는 하지만 크기가 비슷하고 눈이 오목하다 뿐이지 전혀 다른 종류의 새이다. 산보를 하다가 눈앞의 나뭇가지에 앉은 이 새를 보고 옆의 친구에게 “저 앞에 붉은머리오목눈이 좀 봐”하고 말하면 이미 새는 다른 가지로 날아간 이후일 것이다. 이름이란 부르기 쉬워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짧은 것이 좋다. 우리가 즐겨 부르는 새의 이름도 대부분 두세자에 지나지 않는다. 조류도감에 나오는 길고 긴 이름들은 아마도 학자들이 분류를 위해 복잡하게 붙인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지만 내가 모르는 분야이니 알 수 없다.
▲새로 난 부들 싹도 먹잇감이 되는가?(ⓒ임세권)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붉은머리오목눈이를 뱁새라고 부른다. 붉은머리오목눈이라는 긴 이름 보다는 뱁새가 훨씬 더 우리 정서에 와 닿는다. '뱁새가 황새 따라 가다가 가랑이 찢어진다'라는 속담은 가장 흔하게 듣는 우리 속담이다. 분수에 맞게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분수에 맞게 산다는 건 높이 날아보자는 희망을 포기하라는 말이다. 그래서 이 속담은 요즘 청년들에게 그렇게 마음 편히 들리지 않는가보다. 방탄소년단BTS의 '뱁새'라는 노래의 가사가 요즘 청년의 마음을 잘 표현한다. 하긴 실제 뱁새는 황새와는 관계없이 살아간다. 뱁새의 먹이는 황새와 다르니 뱁새가 황새와 겨룰 일이 없다. 이 속담은 희망 없이 사는 사람들이 스스로 위안을 얻기 위함이거나 잘사는 사람들이 스스로의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말해 온 것일 뿐이다.
또 뱁새눈이라는 말이 있는데 사전을 찾아보니 '눈이 작고 가늘게 찢어진 눈'을 비유한 것이란다. 좋은 뜻으로 쓰이지 않는 말이다. '뱁새눈을 하고 바라본다'는 말도 있다. 옆으로 흘겨보는 것을 안좋게 표현한 말이다. 뱁새가 눈이 작긴 하지만 어디 가늘게 찢어졌는가? 뱁새를 빗대려면 뱁새를 제대로 알고 해야 할 것이다.
▲가끔은 나무 위에 앉아 멀리 세상을 내다보기도 한다.(ⓒ임세권)
머리에서 꼬리까지 다 합쳐도 10센티미터 남짓한 조그만 몸집의 뱁새는 몇 십 마리씩 떼를 지어 다닌다. 나는 강변에서 주로 달뿌리풀 사이에서 뱁새를 만난다. 억새와 비슷한 모양을 한 달뿌리풀은 매우 조밀하게 자라기 때문에 줄기와 줄기 사이가 매우 비좁다. 그 틈을 요리조리 날아다 니는 뱁새들을 보면 신기할 정도다. 강변 습지에 많은 부들이 하얀 털에 싸인 씨앗을 사방으로 날려 보내는 가을철이면 털복숭이처럼 변한 부들에 달라붙어 열심히 씨를 파먹는 뱁새들을 볼 수 있다. 부들 씨를 먹은 뱁새는 강의 위아래로 날아가서 먹은 씨를 몸 밖으로 내보낼 것이다. 씨를 바람에 날려 보내거나 뱁새의 몸속에 실어 보내거나 부들이 자손을 퍼뜨리는 것은 마찬가지니 부들이 뱁새가 제 씨앗을 먹는 것을 싫어할리는 없을 것이다.
* 본 글은 『기록창고』 4호에 수록된 내용이며 E-book에서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