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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카이브-열쇠고리에 걸린 사내

  • 강병두(사진작가)
  • 2021-08-26 오후 4:14:49
  • 1,719

 

열쇠고리에 걸린 사내

 

 ▲(ⓒ강병두)           

 

안동에 정착한 지가 22년이나 넘어서고 있다. 서너 번의 이사를 했고 마지막이라 생각한 현재의 보금자리인 난북재瓓北齋에서 열쇠고리를 바라보며 아름아름 추억을 더듬어간다. 라면 상자 두 개를 넘어갈 정도로 모으다보니 정리하는 방법이 여간 까다롭지 않다. 세어보진 않았으나 수천 개는 되지 싶다.

 

아파트에 살 때는 벽면에 나무판자를 대고 나열하기도 했었고 책상서랍에 방치하기도 했었다. 주택으로 이사와 간이 사진스튜디오를 만들며 경비 절약차원에서 주변의 버리는 책상이나 책장을 줍거나 얻어와 재활용 개념으로 구성했다. 여기에 완충고무를 엮어 유리를 얹었다. 작은 공간에 상자를 풀어 놓으며 추억의 책갈피를 열고 닫고를 반복한다. 정리에 시간이 많이 가다보니 기록이라도 해야겠다 싶어 적어보지만 나에겐 소중한 추억이 다른 분들에겐 어떠한 느낌으로 다가갈지 모르겠다. 그저 소시민의 가벼운 주저리라 생각하고 넘어가 주면 좋겠다.

여행이나 답사를 가면 사진을 찍고 현장에서의 추억을 남기기 위해 기념품을 사게 된다. 작은 비용 고효율을 추구하다보면 늘 고민하게 되는데 여러 곳을 가봐도 열쇠고리만한 가성비 높은 물건을 찾지 못했다. 그렇게 하나둘 모은 것이다. 때론 욕심을 부려 고가의 제품이 한두 개씩 섞이기도 한다. 각종 모임이나 행사에서 만든 것, 기념일을 간직하기 위해 발행하는 회사나 가게를 홍보하기 위해 발행하는 홍보용 등 눈에 띄는 모든 것에 관심이 가 사기도 했고 현장에서 물물교환으로 바꾸기도 했다. 처음 한 두 개의 열쇠고리는 필통이나 책상서랍에 있는 것이 다였지만 차츰 늘어가는 재미도 쏠쏠해지니 자연 진열장이 필요해졌다.

 

나는 대구에서 태어나 대전에서 고등학교를, 서울에서 대학을 다녔다. 86 서울아시안게임이 기억나고 88 서울올림픽을 거치며 군 생활을 마감할 즈음에 대학도 졸업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인 83년에 졸업기념 열쇠고리인 해동청마크가 찍힌 것과 불교, 천주교, 기독교인 3종교 고리가 다 있는 것을 보니 피식, 웃음이 난다. 당시엔 종교행사에 참석만 하면 빵이나 우유 등 먹을 것을 주었기에 학생들 사이에서 종교행사 참석이 인기가 많았다. 서울서 민주화 바람이 불 때 야학에 다니며 학생들과 운동장에서 이야기한 기억도 나고 사복을 입은 덕분에 여럿을 곤경에서 도운 기억도 난다. 지금처럼 ‘라떼’세대도 아니면서 당시엔 학생들이 쓸 때 없는 객기를 부린다는 생각이 강해 대화를 나눌 때면 대립이 많았다.

혈기 방장한 청년시절, 캠퍼스의 추억을 담을 생각에 사진클럽에 들어간 것이 계기가 돼 지금의 업이 되었다. 이 모든 것을 작은 열쇠고리를 통해 회상한다. 요한 바오로2세 교황께서 한국을 방문했었는데 1983년과 1989년으로 기억한다. 아마도 서울에 근무할 시절에 간 기억이니 89년 열쇠고리일 것이다. 졸업과 동시인 전역 후 잠시 서울에 있다가 바로 대구로 갔으니 90년도부터는 산에 관한 열쇠고리가 많다. 산악문화의 메카라 불리는 곳이니만큼 등산학교를 통한 전국의 산을 섭렵하고 다닌 것 같다. 남에서는 한라산, 지리산을 거쳐 설악산까지, 금강산은 열쇠고리가 없었고 백두산은 있었다. 산이란 산은 대부분 다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리를 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1992년 한라산 등정기념 강전아’라고 적힌 열쇠고리 사진을 가족 대화방에 올렸다. 전아는 우리 집 큰아이로 92년이면 2살 때다. 지금은 코로나전사로 대구의 병원에 근무하는 간호사다. 전아 왈

“이건 말이 안 되는데… 아빠! 그때 내 나이가 2살 인데, 안고 올라갔나? 학대 아냐?”

“아니 그때 제주에 여행 갔다가 엄만 숙소에 있고 아빠만 잠깐 시간 내 올라갔다왔지!”

마눌님이 조용히 말하길 “그때군, 내가 열 받은 그날이…….”

 

 

(ⓒ강병두)           

 

물론 해외 원정 등반도 여러 차례 있다.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를 필두로 중국 황산, 7일간 행해졌던 일본 남북알프스 종주는 위험면에서 특히나 기억에 나는 것 같다. 2014년에 히말라야 미답봉 등정은 20여 일에 걸쳐 중국 티벳을 통해 했었다. 90년초 신혼시절 홈스테이를 한 적이 있다. 대만에서 온 장애를 가진 학생이었는데 말미에 중국을 여행하고 고국으로 간다기에 무작정 일주일간 따라나선 적이 있었다. 그때는 중국과 수교하기 전이라 가기도 힘들었지만 책에서만 보던 베이징원인 유적지에서 우리 돈 100원주고 산 유비, 관우, 장비를 세긴 열쇠고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조잡하지만 그들의 관우 사랑을 볼 수 있어서 일거다.

학교에 우물 파는 봉사하러 라오스를 몇 해 다녔는데 조잡하지만 그들 나름의 문화를 담았다. 방비엥 인근의 마을 개인집 에서 숙식을 하며 구한 닭 뼈로 만든 열쇠고리가 기억에 남는다. 그들에게 닭은 신성스럽다기 보다는 장수를 비는 점괘의 하나로 취급하는게 흥미로웠다. 난 싼 값에 구입했지만 그들에게 적지 않은 보답을 한 걸로 기억한다.

 

사진과 영화를 좋아하는지라 대화를 유도할 때나 예를 들어 이야기 할 때면 영화의 한 장면을 비유하는 경우가 많다. 대다수의 영화에선 스토리 전개를 시도 한다던가 회상을 할 때면 중복의 의미로 추억이 묻은 열쇠고리나 책갈피 등 작은 소품을 들고 와 페이더 인 아웃 하는 신을 보여준다. 누군가 추억을 먹고 살아가는 것이 사람이라고 말했는데 그런 경향이 강해서일지도 모른다. 어릴 적부터 다양한 것에 관심을 많이 가졌었는데 딱지를 모은다거나 영화 스티커 모으기, 우표, 등 지금까지 유일하게 유지해 온 것은 열쇠고리를 모으는 일이었다.

 

영화이야기가 나왔으니 당시엔 쉬리, 장군의 아들, 귀여운 여인 등 영화 홍보를 위해 열쇠고리를 만들어 배포하거나 팔기도 했다. SES고리도 있는걸 보면 가수도 상당했으리라 생각만 한다. 노래를 못해서인지 가수들의 열쇠고리는 많이 없다. ‘91년도 26회 대통령배 태권도 인천경기’, ‘87년 제1회 수박도 대회’는 상 받았으니 기억이 난다. 강원도 고성에서 최남단인 마라도는 물론 제주도까지 다녀보면 다수의 관광지에서 열쇠고리를 판매하나 영세하고 판매수익을 올리지 못 하는 염려에 제작하지 않는 곳도 많다. 지방자치 시대에 특색을 가미해 색다르게 만들어 홍보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지금은 사라진 회사인 세진컴퓨터나 대우건설, 그리고 사장이 기억에 남는 대구 동산호텔 열쇠고리도 보인다. 지방자치 선거 첫 회에 대구 중구동의 시의원 선거에 나오신 분이었는데 이후로 가세가 기울더니 지금은 무엇을 하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온통 관심이 열쇠고리에 있으니 처음 보는 열쇠고리가 있으면 교환을 청해 바꾸기도 하고 내가 가지 못할 위치나 장소이면 여비를 찔러주며 혹 생각나면 제일 싼 열쇠고리나 하나 사오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렇게 모은 것이 청와대, 국회, 동유럽 쪽이다. 청와대와 국회는 나중에 정치가 아름다워지면 한번 가볼 생각이며 동유럽은 코로나로 언제 기약할지 모르겠다.

참고로 동대문에 가면 한국을 알릴 아름답고 싼 물건들이 많다. 대량 구매했다가 교환하는데 쓰면 유용하다. 아름다운가게를 통한 구입도 유익한데 주로 200원, 300원 단위였다가 지금은 가격이 조금 오른 분위기다. 요즘은 테마를 주제로 나오는 것들이 좀 있는데, 로마시대 성행위를 묘사한 성적취향 고리와 총이나 칼을 주로 다루는 무기종류, 그리고 이미테이션 음식이나 종교 등 다양하다. 그중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는 분야는 빈티지 느낌이 나는 토이카메라나 핀홀 느낌의 작은 카메라, 일회용 필름 카메라 열쇠고리에 빠져 모으고 있는 중이다. ‘촬영하는 행위는 현재를 기록해서 과거를 만드는 것’이라고 이야기 한다. 열쇠고리를 모으는 행위 또한 저비용 고효율의 과거 기록 행위라 생각한다. 언제 어디까지 갈지는 모르지만 여건이 허락하는 한 지속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강병두(사진작가)
2021-08-26 오후 4: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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