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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가게 더 오래된 이야기①-장원사 이야기

  • 강수완(시인)
  • 2020-09-17 오후 1: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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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세월 따라 달라지거나 변해가는 것이 많다.
점점 달라져야 하는 것도 있고 변해서 오히려 아쉬운 것도 있기에,
크게 반기거나 낙담하거나 둘 중 하나인 세상이 되었다.
변하는 속도와 상관없이 시간의 흐름을 지붕 끝까지 덮어 쓴 채
칠이 벗겨져 낡아버린 간판을 머리에 이고 있는 점방이 있어 찾아가 보았다.
 
가끔 지나는 길에 눈길이 가는 곳이었다. 차와 사람이 많이 다니는 큰길가에 자리 잡고 있지만 어쩐지 드나드는 사람 자주 없는 여닫이문의 풍경과 앞 유리의 오래 된 글자들이 새큰거리면서도 반가웠다. 빠른 시대를 다 따라잡지 못한 속수무책의 업종은 그 쇠락처럼 자음 모음이 더러 떨어져 나간 상호로 남아 우리의 지나간 시대를 고스란히 품고 있었다. 안동교회 건너에 장원사라는 간판을 걸고 한 자리에 오래 앉아 장사를 하고 있는 곳. 미싱 기계 하나로 각 관공서의 단체복이나 학교 교복의 이름표 혹은 모자 가방 등속에 수를 박아 로고나 이름을 새기며 밥벌이를 했다던 자리.
 
일이 한창이었던 시절에는 공무원 월급의 두 세배를 벌었던 적도 있었다니, 그 좋은 시절은 가고 요즘은 컴퓨터로 일을 하는 세상이라 오래 전부터 일감은 끊기다 시피 했다니 쓸쓸한 일이다. 세월을 탓할 수도 없고 없는 일거리를 만들어 낼 재주도 없어 가게 문을 열고 앉아는 있지만, 점점 가게 세조차 감당하지 못할 지경이라 그만 문을 닫아야 할지 고민이 깊다고 했다. 건조한 그말에 오래 된 벽지의 누런 색깔만큼이나 같이 근심이 깊어졌다.
 
가게 안쪽에 아직도 형광등 하나로 미싱을 밝혀 주는 작업 방이 하나 있는데, 형광등을 켜고 끄는 스위치 손잡이가 천정에 매달려 까마득한 옛날의 호황 같이 대롱거리고 있었다. 저 형광등 손 스위치를 마지막으로 본 적이 언제였던가? 전망 없다는 가게를 전망도 없이 지키고 앉아 있는 주인처럼 그만 측은해 졌다.
 
오래 된 것을 부끄러운 것처럼 버리고 바꾸고 다 없애버렸으니 추억할 물건이 별로 없는 세상이 되었다. 그 세상이 불편한 걸 모르고 살았다. 그저 반짝이는 새것이 촌스러움을 앞서가는 것이라 생각했고 당연하게 여겼다.아니다. 새롭고 더 크고 더 반짝이는 것들로 편하고 즐겁고 윤기 나는 세상이 되었다고 여겼다.
 
한때 손으로 새기는 도장이 젊은 층으로부터 인기를얻었다. 조금 비싸게 팔려도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손느낌을 간직하려는 사람들로 도장 집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리는 진풍경이 일어나더니, 어느새 양복점을 다시 찾는 사람이 늘어나더니 양장점이 슬그머니 새로 문을 열기도 했다. 복고 열풍이 불어 옛 물건들로 채운 찻집도 생기고, 손편지도 주고받고, 막걸리 주점도 생겨나고, 한옥이 인기를 끌어 며칠 묵어가는 집이나 공방, 책방이 생기기도 하더니 옷도 신발도 가방도 머리 모양까지 몇 십 년을 돌아 다시 유행하는 시대가 왔다.
 

▲명찰, 체육복, 운동구 취급점 장원사 내부(ⓒ강수완)

 

그런 곳으로 사람이 몰리고 누리고 퍼트리기도 한다며, 이 업종도 다시 눈길을 끌 수 있다는 희망적인 전망을 한껏 주인에게 펼쳤으나 돌아 온 답은 절망적이었다. 컴퓨터가 그 자리를 꿰차고 앉은 지 이미 오래이며, 지금까지의 기술은 결국 밀려나 복고 열풍에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 딱 잘라 말했다. 아니 돌아올 수 없는 기술이라 했다. 편리하고 세련된 컴퓨터 작업이 훨씬 정확하고빠르게 돈벌이가 된다는 논리 앞에 위로의 말이 뭔 소용인가. 아무리 기술이 있어도 찾아오는 손님이 있어야 한다는데 그 말이 맞으니 어쩌나.
 
안동 동종업계 사장 밑에서 몇 년 간 모질게 일을 배운 뒤 꿈에 부풀어 독립을 해 지금 이곳을 인수했을 때의 나이 서른여섯 살이었다니, 청춘 한 시절을 이 일 하나로 보낸 것만은 틀림이 없다. 솜씨가 꼼꼼하고 손으로 하는 일이 잘 맞아 근방에서 찾는 손님들로 넘쳤다. 혼인도 하고 아이도 낳아 길렀다. 그러는 동안 스무 해가 다시 훌쩍 넘었다.
 
그 전에 낚시점을 했던 자리라 그런지 아직 가게 곳곳에 팔다 남은 낡은 낚싯대나, 사탕 깡통에 꽃처럼 꽂아 놓은 찌가 더러 있었다. 체육복 가슴 한 쪽에 단체나 개인의 이름이 박힌 채 옷걸이에 걸려 있는 체육복도 오래되긴 마찬가지였다. 작은 것 하나까지 버리지 않고 두었던 까닭에 옛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었으니 가게 안 밖과 주인은 서로 닮아 있었다.
 
돈벌이가 안 된다는 일에 발목을 잡힌 주인은 그래도 얼굴이 담담했다. 이 일로 아이들 뒷바라지 다 하고 온식구가 큰 고생 없이 살았으니 이만하면 안 되었느냐며 사람 좋게 웃었다. 지금은 필요 없어진 인쇄 기구며 도구와 기계들이 한데 어울려 조그마한 가게 안이 주인의 만족한 세상살이로 가만히 흘러가고 있었다. 그래서 시간은 자주 멈추고 간판 글자는 가끔 바람에 제 이름자를 조금씩 덜어내었구나 생각했다.
 
더 원하고 바라는 만큼 마음이 복닥거리는 건 살아가는 이치이니, 어느 쯤에서 그칠 줄 아는 것이 행복이라 했다. 더 못 가져서 안달인 세상에 오래된 기계를 앞에 두고 웃을 수 있는 마음을 들여다보다가 부럽고 부끄러웠다.
 

 ▲일일이 손으로 작업했던 옛 도안들. 이제는 써먹지 못할 기술이 아니던가.(ⓒ강수완)

 

한 동안 흘러 간 시간을 돌아다보며 이것저것 이야기하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옛날 작업하던 방식을 알려 줄 때는 눈에서 빛이 났다. 서랍에서 옛 도안을 꺼내고 헌 상자에서 작은 도구들을 꺼내어 펼쳐 놓고 설명을 해 주는데, 이 방식은 지금은 아무도 쓰지 않는다고했다. 컴퓨터 기술이 워낙 발달하여 이전 방식으로는 작업을 할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수지도 안 맞아, 굳이 기술을 배우려는 사람도 없고 물려 줄 수도 없다고 할 때는 잠시 막막한 눈빛이 되기도 하였다. 기술적으로 살아날 사업이 아니라고 또 한 번 강조하는데 이번에는 듣는 내가 먹먹해졌다.
 
투명하고 미끄러운 종이를 원하는 도안 위에 올리고 손으로 눌러 고정 시킨 후 조심스레 특수 연필로 일일이 따라 그린 다음, 완성된 도안 뒷면에 재봉틀 기름을 바르고 본을 뜬 후 재봉틀로 박아 완성시켰다니 일의 속도와 정성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손 많이 가고 어려운 일을 요새 누가 배운다는 말인가. 글자 한 획 한 획에 자를 대어가며 눈금 맞추어 그려내었던 도안 판이 남아 있어 보여 주는데 정교하고 정성스러웠다. 그렇게 박아 내는 글자들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주인은 기억하고 우리는 잊었다.
 
요즘 자전거방도 다시 살아나 달라진 시대를 즐기고, 촌스러운 예전의 물 컵이나 술잔 등 온갖 생활용품들과 하다못해 못 쓰게 된 농기계나 공구 따위조차 추억을 되살리는 감성물품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마당에 영 살아 나지 못하는 사업이라니 세월 따라 사라지는 것에 더 미련을 둘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많은 작업 중 가장 애착이 가는 주문 물품은 아무래도 영국여왕이 하회마을을 방문 했을 때 처음으로 의뢰를 받아 인쇄 했다는 홍보용 인쇄물이라며 자랑스레 보여 주었을 때만큼은 함박 웃음이 그치질 않았다. 여기 저기 나누어 주고 기념으로 딱 한 장씩만 간직하고 있다고 했다.
 
한창 돈 벌이가 될 때의 주 소득원은 아무래도 회사의 각종 명찰이나 관공서에서 나오는 일감 혹은 단체복 등에 이름을 새기거나 로고를 박을 때였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때 일을 했던 견본이나 자료가 더러 남아 있는 단체복, 모자, 명찰 등을 찾아 보여 주었다. 지금은 바뀐 몇몇기관의 이름이나 학교 또는 없어진 단체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흐른 세월이 가늠되기도 했다. 지금은 이런 걸 찾는 사람도 없고 궁금해 하는 사람도 없는데 뭘 묻고 사진을 찍느냐며 주인이 오히려 궁금해 하였다.
 
그간 별 일거리도 없이 출근하여 혼자 앉아 있다가 퇴근하길 거듭하는데 내년까지 남아 있는 가게 임대 계약 때문에 당분간은 어쩔 수 없다는 말이 깊게 출렁거렸다. 가게 옆 골목으로 난 창문에 녹이 슨 창살과 환기구에 매달린 먼지, 누군가 다 때고 내놓은 연탄재 몇 장까지 쓸쓸한 오후, 우리는 각자 어디로 바쁘게 가고 있는 것인가 생각에 잠겼다.
 
역사가 무슨 거창한 일이겠는가? 지나간 일들을 간직하고 있으면 역사기록물로서의 가치 아니겠는가? 보기에 누추하고 안타까운 가게 안에는 이처럼 안동 곳곳의 크고 작은 역사가 청포도처럼 그야말로 알알이 들어 차있으니, 어찌 허술한 것이라 함부로 흘러 보내고, 허물고, 없애며, 싹 뜯어 고칠 수 있다는 말인가?
 
고등학교 때 입었던 교복 한 벌을 아직까지 간직하고 있는 나로서는 교복 윗도리에 누군가 정성 들여 새겨 주었을 이름표를 다시 들여다보고 싶어졌다. 설레었던 세월을 까마득히 흘려보내며 살아오느라 오래 한곳을 들여다보는 일이 드물어지는 동안, 잊었거나 잃어버린 것 들을 꽃에 물 주듯 가끔 살펴야겠다. 장원사 간판 아래로 시장경제 논리를 따지지 않는 사람들이 혹여 옛날을 그리며 이름자나 새기러 오기를 간절히 바라며 겨울바람에 길가로 나섰다.

* 본 글은 『기록창고』 5호에 수록된 내용이며 E-book에서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강수완(시인)
2020-09-17 오후 1: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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