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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네비게이션은 꺼도 돼①-녹전면 원천리 두부 집에서 만난 힐링

  • 권영창(영창필름 대표)
  • 2020-09-15 오후 3:5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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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두부집 사장님, 의성댁 홍태임(68)(ⓒ권영창)

 

지쳐있었다.
온갖 부조리와 역설적인 상황을 마주했던 서울 생활. 지난 9월, 나는 그곳을 겨우 도망쳐 나의 고향 안동으로 돌아왔다. 나를 품어 줄 고향 땅에선 인생의 행복을 찾을 수 있겠다는 막연한 희망이 있었다. 안동으로 돌아오겠다는 나의 결정에 역시나 주변 사람들은 진심 어린 걱정과 충고를 많이 해주었다. 그러나 이미 나의 결심은 확고했고, 언젠가부터는 일일이 귀향 이유를 설명하기도 버거워 그저 “서울 생활 뭐 별거 없드만요. 재미없어요.”라는 말로 가볍게 말을 자르곤 했다.

그렇게 치기 어린 마음으로 돌아온 안동이었다. 서울과 안동에서 나의 귀향을 걱정하던 이들에게 누구보다 잘 살고 있음을 증명이라도 하고 싶었는지 귀향하자마자 이런 일 저런 일, 의뢰가 들어오면 일단 무슨 일이든 닥치는 대로 받았다. 무언가를 이루고 성과를 남겨야 한다는 생각이 컸다. 하지만 일이 쌓이고 쌓이니 점점 내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부담이 되었다. 납품기일을 못 맞추기 일쑤였고 한작업을 겨우 마무리하면 다음 작업에 바로 매진해야 하니 밥을 거르듯 잠도 거르며 나의 삶은 점점 무너졌다.

안동에 온 지 겨우 한 달 만에 지쳐버린 것이다. 행복을 찾아 내려온 고향인데, 이곳에 정말 행복이 있긴 한 건가, 스스로 묻고 또 물었던 지난 며칠이었다.

그날도 밤을 새웠다. 지방 촬영출장을 갔다가 안동으로 돌아오는 길. 점심에 마신 에너지 드링크의 뒷심으로 간신히 졸음을 참으며 운전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유독 내비게이션 안내 음성이 신경 쓰였다. 안동 시외 길을 잘 모르는 내게 참으로 고마운 시스템이지만 그날은 그랬다. 가뜩이나 감당 못할 스트레스로 갈 길을 제대로 못 찾는 것 같은 심정이었는데, 여기서 우회전해라 좌회전해라, 여기선 속도를 줄여야 해! 하는 말들이 모두 잔소리처럼 들렸다.

그래서 내비게이션을 껐다. 나름의 반항심이었다. 10분, 20분 사무실 조금 늦게 복귀한다고 뭐라 할 사람도 없었고, 길을 잃은 것을 핑계 삼아 괜히 이리저리 동네 구경도 하고 싶은 심산이었다. 나는 다음 신호에 직진하라고 했던 내비게이션의 말을 기억하고 당장 좌회전을했다.

길 잘못 들인 것뿐이었지만 낯선 길을 만난 것에 벌써 해방감이 들었다. 풍경이야 늘 보던 산이고 들판인데 어째 여행 온 느낌까지 나서 기분이 들떴다. 굽이굽이 오르막길을 오르다 비행기 이륙할 때처럼 귀가 조금씩 먹먹해질 때쯤, 고개를 넘으니 교회도 보이고 보건소도 보이고 민가도 눈에 들어왔다.

구경도 할 겸 조금씩 속도를 늦추어 동네를 지나는데 '손두부'라는 간판을 보고 무의식적으로 차를 멈췄다. 원체 두부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이미 해가 뒤통수 뒤에서 뉘엿뉘엿 저물고 허기질 시간이었으니, 지쳐있던 중추신경계도 생존본능이 발동했는지 제멋대로 브레이크부터 밟은 것이다. 차에서 내리니 고소한 콩 내음이 먼저 코를 간질였다. 두부집이 세 군데 정도 눈에 띄었는데 점점 더해지는 허기에 맘이 급해 일단 가장 가까운 두부집 마당으로 후다닥 들어갔다.
 

 ▲고운 자태를 뿐내는 두부(ⓒ권영창)

 

“계십니까?”
대답이 없자 다시 한 번 “아무도 안 계세요?”라고 대충묻고 다른 곳으로 발길을 돌리려던 찰나, 어느 할줌니(할머니라 하기엔 젊으시고 아주머니라 하기엔 또 모호한)께서 버선발로 쫓아오셨다. “아이고, 두부 사러 왔니껴. 내사 저짜 슈퍼집 아지매하고 수다 떤다꼬 손님 온 줄도 몰랐네. 호호홍. 얼러 들어오소.”

웃는 모습이 너무 맑으셔서 지쳐있던 내 맘이 순두부처럼 사르르 녹아내릴 지경이었다. 어머님의 손에 이끌려 들어간 두부집은 내 편견 속의 시골 두부공장이 아니었다. 널찍한 공간에 젊은 느낌의 알록달록한 메뉴판, 오와 열을 맞추어 깔끔히 정리된 조리도구들, 게다가 갓 목욕을 끝낸 아기 피부처럼 반들반들한 가마솥까지 어머님의 정성이 모든 곳에서 느껴졌다.
 

 ▲안동시 녹전면 원천2리 손두부 집 전경(ⓒ권영창)

 

 ▲항상 깔끔하게 관리하는 가게 내부(ⓒ권영창)

 

어머님은 나를 두부집 한구석에 마련된 테이블에 앉히고 오늘 갓 만든 두부 한 모를 칼로 대충 잘라 팔팔 끊는 양은 냄비에 데쳤다. 두부집에서 두부를 먹는 것은 처음이라 궁금한 점을 물어보고 싶었지만 부지런히 반찬을 내 오시는 통에 질문은 잠시 아꼈다. 어머님이 냉장고와 항아리를 몇 번 뒤적이자 테이블 위가 금세 수라상으로 변했다. 푹 삭힌 배추김치, 겉절이와 각종 장아찌, 그리고 흰 두부 퐁당 담굴 간장 종지를 보니 저절로 군침이 꼴딱, 파블로프의 반려견처럼 입안에 침이 한가득 고였다. 시장이 반찬이라지만 반찬이 곧 시장이었다.

어머님이 뽀얀 손두부를 들고 테이블로 한 걸음 한걸음, 발을 내딛는 움직임마다 두부의 뺨도 함께 탱글탱글 춤을 췄다. 모락모락 피어나는 김은 두부의 모습을 가리긴커녕, 따뜻 고소한 두부의 맛을 눈으로 먼저맛보게 했다.

두부를 담은 그릇이 테이블에 닿자마자 젓가락으로한 조각을 금방 떠 입으로 훔쳐 넣었다. 고소했다. 정말로 고소했다. 두부의 김이 콧구멍을 타고 나올 때마다 고소한 향기가 입안을 휘감았다. 부드러운 두부를 오물오물 씹어 넘기면 목구멍 끝에서 달큼한 감칠맛까지 감돌았다. 두부의 제맛을 느끼고 싶어 간장과 김치를 다음 순서로 미뤄둔 것을 정말 잘한 일이라고 생각이 들정도였다. '도시 촌놈들은 이 맛을 절대 모르겠지.' 속으로 너스레를 떨어보니 괜히 더 고소하고 맛있게 느껴지기도 했다.
 

 ▲주방 벽에 붙어 있는 깔끔한 메뉴판, 따님이 직접 만들어 주었다고 한다. 수량이 늘어난다고 해서 할인이 되지 않는 점이 특징(ⓒ권영창)

 

촌에선 흔할 법한 진짜 손두부의 맛을 음미하느라 혼자 호들갑 대잔치를 여는 동안 어느새 어머님이 맞은편 의자에 앉아 계셨다. 나는 내가 아는 모든 최상급 수식어를 동원해 두부 맛이 얼마나 감동인지 어머님께 설명하느라 애썼다. 그래도 어머님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시며 입가에 옅은 미소만 지었다.

분명 고수의 표정이었다. 얼마나 오래 내공을 닦으셔야 이런 맛이 나올까? 문득 어머님의 두부 경력이 궁금해졌다.

“어머니, 두부 하신 지 얼마나 되셨어요?”

“뭐, 이제 한 6개월 됐나.”

충격이었다. 심지어 두부를 따로 배우신 적도 없고, 사돈이 두부 만들 때 어깨너머로 본 것이 전부라고 하셨다. 두부를 하기 전엔 같은 자리에서 방앗간만 30년 하셨다. 왕년엔 생일이나 제사, 명절마다 줄 서서 떡을 해가던 곳이었는데 날이 갈수록 교통이 편리해지니 다들 시내 방앗간만 찾는 탓에 자연스레 장사를 접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여기서 재미난 점은 방앗간을 처음 열었을 때도 따로 기술을 배운 적이 없다는 것이다. 동네 친구들이랑 아랫동네 방앗간 놀러 갔다가 슬쩍 눈동냥으로 익힌 것이 30년 방앗간 기술의 밑천이 되었다.

매일 같이 새벽 네다섯시에 일어나 두부 한두 판 만들어, 늦은 저녁까지 점방에 붙어사는 삶. 분명 겸손의 말투너머에 지난한 노력과 인고의 시간이 있었으리라 추측을하다 보니, 이제 겨우 서른 나이에 지쳐버린 나 자신이 한없이 작아 보였다. 다시 조심스레 여쭤보았다.
 

 ▲자연스럽게 마주 앉아 나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는 어머님을 카메라에 담아 보았다.(ⓒ권영창)

 

“힘들진 않으세요? 지금 연세에 새 출발 하시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닐 것 같은데….”

“노니 뭐 하노. 촌에 할 일도 없고. 돈은 얼마 안 되지마는 일부러 찾아오고 잡숫는 사람 있으이께네 자꾸 하게됐지 뭐. 하다 힘들고 하기 싫으면 치아. 내 안 하면 그만이지.”

우리네 어르신들이 가진 보편적인 근면성으로는 쉽게 이해하기 힘든 말이었다. 특히 '하다가 아니면 말지'는 으레 가지지 않아야 할 태도로 배운 나의 삶에서는 특히 근면하지 않을 용기가 근면의 비결이라니…. 어깨에 힘을 빼야 어깨 힘을 제대로 쓸 수 있다고 한 어느 홍콩 영화 속 무림고수의 대사가 생각났다.
 

 ▲두부에 쉰 김치는 극강의 조합이지만 이 두부는 그냥 먹어도 맛있다.(ⓒ권영창)

 

머리를 골똘히 굴리다 보니 다 못 먹을 줄 알았던 두부한 모를 어느새 부스러기 하나 안 남기고 다 해치웠다. 고추 장아찌보다 매콤 달콤한 어머님의 말씀 덕이었나 보다. 두부 값을 계산하고 점방을 나가려는 순간, 어머님이 내 뒤통수에 말을 건넸다.

“놀러 좀 댕기. 일만 하지 말고.”

내가 왜 힘들어했는지, 그새 어머님은 눈치를 챈 것일까? 툭 내뱉은 그 말씀이 내 가슴을 관통했다. 차에 올라습관적으로 내비게이션을 켜려고 했던 내 손을 잠깐 멈추었다. 빨리 정확하게 가는 것만이 정답이 아니었다. 앞만 보고 내일만 바라보며 달리는 삶이 능사는 아니었다. 가다 지치면 샛길로 빠져 놀러 댕길 용기를 가질 필요도 있다. 그날, 샛길에 우연히 들른 두부집에서 두부보다 고소한 삶의 지혜를 배우고 왔다.
 
* 본 글은 『기록창고』 4호에 수록된 내용이며 E-book에서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권영창(영창필름 대표)
2020-09-15 오후 3:5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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